1930년대 말 브레히트는 뉴욕의 한 파티에서 모스크바 전시 재판의 피고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여 참석한 손님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무고할수록 총살을 당해 마땅하다."
이 말은 심술궂고 건방진 발언이 아니라 매우 진지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발언에 깔린 전제는 구체적인 역사적 투쟁에서 "무고한" 태도(나는 투쟁에 말려들어 내 손을 더럽히기 싫다, 나는 소박하고 정직한 삶을 살고 싶다)는 궁극적 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계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텅빈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즉 현존하는 지배 관계에 "예"라고 말한다는 의미다.
지젝이 만난 레닌 중에서 발췌.
"무고할수록 총살을 당해 마땅하다."
이 말은 심술궂고 건방진 발언이 아니라 매우 진지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발언에 깔린 전제는 구체적인 역사적 투쟁에서 "무고한" 태도(나는 투쟁에 말려들어 내 손을 더럽히기 싫다, 나는 소박하고 정직한 삶을 살고 싶다)는 궁극적 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계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텅빈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즉 현존하는 지배 관계에 "예"라고 말한다는 의미다.
지젝이 만난 레닌 중에서 발췌.
근래 내가 화두로 삼고 천착하려는 어떤 주제와 맞물려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브레히트의 총살형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주적 차원에서 모든 생명은 우주 자체와 언제나 함께 해왔다. 시간이 흐른다는 말을 인정한다면 우주는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와 동갑이다. 단지 몸을 바꿔 지금의 나를 이룬 것일뿐, 다시금 돌아갈 것이고 또 다시 어떠한 방식으로든 생명의 일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온생명의 그 가려는 방향이 어디일런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연결됨이, 비단 동시적 연결됨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미래로까지의 연결됨을 포괄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삶을 어떤 형태로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점이 조금은 명확해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란 있을 수 없다. 내 움직임 하나에 우주가 파동친다. 생각할수록 오금이 저리는 일이다. 가장 악한 존재로 살다가는 것마저도 역사적 흐름에서는 중요할 수가 있다. 그 악함으로 인해 일시적 고통은 있을지언정 거기서 새로운 무엇이 돋아난다. 그러므로 우주적 관점에서 한 인간의 삶이란 허와 무로 점철되어 있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의 윤회에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함의가 깃들어있다. 달라이 라마가 죽고 다시 그 영혼이 새로운 쿤둔으로 환생한다는 식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실상은 그보다 오묘하다. 전대 달라이라마와 새로운 달라이라마가 같은 사람이냐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달리, 그 둘 사이의 어떤 강한 연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방식의 설명은 충분히 가능하다. 역사의 관점에서 내가 과거 어떤 인간의 저작(혹은 그와 관련된 전승되는 이야기)을 읽음으로써 그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강한 영감을 주게 되고 그에 따른 내 삶이 우주적으로 파동친다. 그 파동에는 과거 어떤 인간의 의지도 일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방식의 강한 연결고리, 그것을 인연이라 부른다면 굉장히 매혹적인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 결국 그와 나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내고 나를 통해 그의 꿈이 실현된다. 아니 결코 실현될 수는 없다. 언제나 우리의 꿈은 실현되어가는 과정일뿐이니까. 그러나 그 실현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의 꿈이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에 의해 내 꿈이 실현되어간다. 이러한 방식의 설명은 너무나 아름답다! 인생의 짧음, 덧없음이 우주적 관점에서 얼마나 감동적으로 재탄생하는가. 그러므로 나는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그 전에 과거 어떤 인간들의 글들을 탐독하기로 마음 먹었다. 과거의 어떤 인간과 나 그리고 또다른 젊은 나 사이에 강한 연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결국 그런 강한 연결은 나라는 자아를 한정짓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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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젝의 글을 읽으며 (0) | 2008/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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